[나인스타즈=이지은 기자] 무대 암전과 동시에 기교한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선율에 온몸에 날이 서린다. 완벽한 라이브에 빠져드는 순간, 만나게 되는 ‘더 모먼트’는 한겨울과 참 잘 어울리는 따뜻한 뮤지컬이다.
작품은 시간이 멈춘 산장에 갇힌 세 남자가 사랑하는 연인 지혜를 만나기 위한 이야기다. 특히 양자역학과 다중우주론을 기반으로 시간과 공간 운명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운 설정 중 하나다. 뮤지컬에서 SF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다소 생소할 수 있겠다. 하지만 뮤지컬 ‘더 모먼트’는 무대효과, 조명, 그리고 피아노와 바이올린 2인조 라이브 연주는 관객을 시공간적인 공간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지난 2020년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초연됐던 ‘더 모먼트’는 갑작스럽게 조기 폐막하며 많은 이를 놀라게 했다. 당시 제작사 측은 코로나바이러스-19의 여파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은 더 이상 공연을 이어가는 데 무리가 왔기 때문. 해당 제작사 대표는 배우와 창작자에게 페이를 미지급한 채 연락이 두절된 사건으로 남았다.
‘더 모먼트’는 약 1년 6개월 만에 새로운 제작사 홍컴퍼니를 만나 돌아왔다. 초연에 이어 이번 공연에도 참여하는 배우 원종환은 “이전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준 홍컴퍼니에 감사한다”는 진심 어린 말을 작품의 프레스콜에서 전한 바 있다.
이렇게 지난해 12월 14일 개막해 관객을 만나고 있는 작품은 초연과는 조금 다른 변화를 보였다. 양자역학의 소재로 시간을 초월하는 소재는 그대로 유지하되 극의 흐름에 더 자연스럽게 녹여낸 것. 또 영상 효과를 적극 활용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 세 남자의 ‘더 모먼트’에 집중하게 만든다.
10대 소년, 남자, 사내 3인극의 작품은 각기 다른 세 사람의 사랑을 애틋하게 그려낸다. 이들의 연인 지혜는 목소리만으로 등장해 더욱더 그리운 존재로 부각된다. 남녀의 사랑과 시공간간적인 소재는 다소 진지하지만, 작품이 던지는 웃음 포인트는 군데군데 묻어 있다. 특히 사내로 분한 최호중의 연기가 매우 인상 깊다. 본래 대본이 맞나 의심이 될 정도로 유쾌했고 그날의 피로는 이내 웃음으로 번진다.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위한 일에 몸이 움직이는 건 당연한 본성이다. 하지만 세 사람을 통해 바라본 순간에 우리는 다시금 주변을 돌아보며 그 어떤 무엇도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그가 만나고 싶어 했던 건 지혜만이 아닌 사람간의 공존이었을지 모른다. 시간을 거슬러 운명까지 바꿔버린 순간이 따뜻해지는 이유다.
뮤지컬 ‘더 모먼트’는 6일 대학로 TOM2관에서 이번 시즌 공연을 마무리한다. 배우 최호중, 원종환, 윤석원, 주민진, 김도빈, 손유동, 송광일, 신재범, 임진섭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