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스타즈=이지은 기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갈림길에 선 모든 이에게 그래도 괜찮다. 다독이며.”
연극 ‘비클래스’가 묵직한 울림을 안긴다. 음악, 예술인으로서 저마다의 꿈을 위해 나아가는 스무살 청춘들의 솔직한 내면을 110분간의 무대를 가득 채워 나갔기 때문. 본연의 실력보다는 타고난 배경과 조건으로 평가받는 냉혹한 현실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몰입하고 만다.
지난 2월 개막한 작품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제작사 골든에이지컴퍼니를 만나 변모했다. 내로라하는 집안의 자제만이 들어갈 수 있는 사립 봉선예술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실력이 아닌 능력과 조건만으로 평가받는 살얼음판 안에서 B클래스로 찍힌 네 청춘에게 A클래스 도장이 찍힌 졸업장을 위한 기회가 찾아온다.
암흑 속에서 들리는 택상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극은 전반적으로 내래이션이라는 요소를 통해 몰입감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낸다. 작곡을 전공 중인 택상은 엄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아들이기도 하다. 좋은 성적표를 얻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고 그의 간절한 마음은 더욱 극에 달한다.
실력을 증명받을 수 있는 합동 졸업 공연을 준비해야 하는 네 청춘의 찬란한 시절을 ‘경쟁’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 둔 설정은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한 편의 청춘 동화이자 한 소년의 일기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극의 초반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라며 넌지시 말하는 택상의 질문은 ‘비클래스’를 함축해 놓은 것과 같다. 자신의 꿈을 위해 달려가는 그의 모습과 달리 마지못해서 할 수밖에 없는 이와 어른의 욕심으로 추락하게 된 이 모두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곧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선택에 기로 앞에 서 우리의 모습을 대변한다.
무엇보다 실로 각자의 사연이 오가는 대화는 매우 현실적이며 때론 참혹하다. 차가운 욕설을 내뱉던 수현이 “그래도 괜찮다, 다독이며” 노래로 감춰왔던 자신의 허물을 벗고 진정한 ‘나’를 보여준다. 극 중 이수현을 완벽하게 보여준 배우 김찬종의 모습에 내적 탄성을 자아낼 정도. 친구들 앞에서는 강한 척 무서운 사람으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사실 따뜻한 마음을 위로 쓰라린 아픔을 꾹꾹 눌러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무용 전공생 치아키 역을 맡은 한선천의 연기도 인상 깊다.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한 그는 어리숙한 한국어 발음은 물론 재치 있는 입담으로 극의 흐름을 유쾌하게 이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 더욱 눈여겨 보여지는 순간이다. 실제로 무용을 전공한 한선천의 춤선 또한 만나볼 수 있으니 제대로 짝을 찾은 듯하다.
연극 ‘비클래스’에서는 무대 위 어떠한 특별한 장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배우의 ‘합’만으로 묵직한 이야기에 더욱 힘을 실은 것이다. 현실적인 이야기만큼이나 ‘찐’ 우정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은 5월 15일까지 브릭스씨어터에서 공연된다.
